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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정조 11년 5월에 프랑스의 해군 대령인 라 페루즈(Jean-Fran?ois de Galaup, comte de La Perouse, 1741-1788)가 이끌고 세계 일주 항해를 하던 도중 우리나라 남해안과 동해안을 탐사하여1787년 5월27일 서양인 중 최초로 울릉도를 목격하였다.

 

그후 동승했던 천문학자 다줄레의 이름을 따 다줄레 섬(Isle Dagelet)이라 명명하였으며, 이 이름은1950년대까지 세계지도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울릉도의 어민들은 폐루즈의 탐사대를 목격하고 봉화불을 밝히는 등 신속히 대응한 것으로 보이며, 라페루즈의 탐험대는 울릉도 상륙 일보전에 철수하여 독도는 보지 못하고 항로를 북쪽으로 하여 타타르 해협으로 향하고 만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탐사 활동만 하고 지나쳐서인지 조선 왕조 실록에는 이들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 있지 않다.

 

울릉도 탐사 경위는「The voyage of La P?rouse around the world 라페루즈의 세계 탐험기」에 실려 있는데,

이 책은 1791년 4월22일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명에 의해 출판 작업에 착수, 1797년 프랑스 국립인쇄소에서 출판됐다.
항해 일지 형식의 이 탐험기에는 울릉도 탐사 경위가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남해안과 동해안의 해안선을 실측하여 작성한 해도, 제주도 남부 해안 및 울릉도의 실측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1668년「하멜 보고서」이래 서양인이 한국을 직접 목격,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기록한 최초의 자료이다.

 

라페루즈 탐험대가 1785~87년 사이에 측정한 해안선, 해도, 섬들의 위치, 산의 높이, 수심 등은 대단히 정확한 것이어서, 프랑스 해군은 이 해도들을 수정 없이 반세기 이상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수치와 비교해도 오차가 미미해, 현재까지도 유효하다고 할 만큼 과학적이고 정밀한 것이었다. 1788년에 태평양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탐험대 2백여 명의 노력과 이들의 목숨, 새로 건조한 두 척의 프리깃함정, 당시로서는 가장 발달된 항해 장비, 측정 장비, 방대한 자료 등이 희생되고 그 대가로 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짙은 안개와 함께 15일간이나 계속된 평온한 날씨가 변하여 바람은 북서 방향으로 고정되었고 대단히 시원했다. 일기는 흐리고 희끄무레 했지만, 수평선이 수십km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그렇게도 잔잔했던 바다에는 풍랑이 대단히 심하게 일었다. 이때 닻이 닿는 수심은 약 46m였다.

 

나는 일순간도 지체 없이 출발 신호를 했고, 북동 1/4동방향, 제주도(퀠파트섬)로 항로를 지도했다. 제주도는 일본 해협에 진입하기 전의 최초의 인식 지점이다. 이 섬은 1635년 홀랜드 선박 스패로우 호크 (Sparrow Hawk)호가 좌초함으로써 유럽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 이 시기에 조선왕의 지배하에 있었다.

 

우리는 5월21일 이 섬(Quelpaert, 제주도)을 알게 되었는데, 거리 측정에는 이상적인, 더 할 수 없이 맑은 일기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한 섬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섬의 남쪽 첨단부의 위치를 북위 33°15', 동경 124°15'(위도는 오늘날의 수치와 같고, 경도는 현재 126°15'이므로 약 2° 정도 차이가 남)로 확정했다. 나는 섬에서 11km 떨어져 항해하면서 67km(제주도 동서의 길이는 73km)에 걸쳐서 전개된 해안을 최대한 세심하게 측정했고, 이를 베르니제(Bernizet) 씨가 지도로 작성했다. 정상의 높이는 약 1천9백50m였고, 1백~1백10km거리에서 식별할 수 있었다.

 

정상은 섬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고, 이 산 자체가 섬인 것 같았다.
토지는 매우 완만한 경사로 바다까지 내려왔다. 이 경사면에 있는 집들은 마치 대강당의 층계처럼 층을 이루고 있었다. 땅은 아주 높은 지대까지 경작된 듯했다. 망원경을 통해 밭과 밭 사이의 구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밭이 아주 작게 나누어진 것으로 보아 인구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각종 경작물이 매우 다양하게 자라는 모습은 이 섬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불행히도 이 섬은 외국인과의 소통이 금지된 민족에 속하며, 이 민족은 이 나라 해안에 표류하는 불행을 겪는 모든 사람을 노예 상태에 억류해 둔다.

 

[자료제공 : 한국범선모형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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