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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년(1419년)에 상왕(上王)으로서 병권을 쥐고 있던 태종(太宗)은 군선 227척과 17,285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세종(世宗)대에는 대선(大船), 중선(中船), 병선(兵船), 쾌선(快船), 맹선(猛船) 등 829척의 군선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1510년 삼포왜란을 시작으로 1555년 을묘왜란에 이르기까지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명종10년(1555년) 선상에 구조물을 만들고 160여명의 군사가 탑승할 수 있는 판옥선이라는 대형선박을 건조했다.

이 배는 갑판 위에 다시 상갑판을 꾸미고 그 위에 사령탑인 장대(將臺)를 설치하였다. 노 젓는 사람은 갑판과 상갑판 사이의 안전한 곳에서 노를 저을 수 있게 했고 전투원은 높은 상갑판 위에서 적을 내려다보면서 전투할 수 있게 하였다.

 

 

 

거북선14문이라는 대구경 대포를 탑재하고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했으며, 용의 머리를 달고 잔등에는 칼과 송곳을 꽂아 놓았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함대는 거북선을 포함 총 160척~180척이었지만, 옥포, 한산도 부산포 해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에는 거북선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북선은 조선 후기에도 수군의 주력함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민간선박은 관의 부족한 선박을 충당하는 의미에서 동원, 차출되었다. 선박건조는 관에 의해 이루어졌고, 민간선박은 선령이 만기가 된 전함이나 관선을 매입해 관에서 정한 규격에 맞게 재건조해 사용했다.

민간 선박으로는 조선 후기에 고깃배, 소금배, 장삿배 등 어염상선이 연안을 따라 활발한 상업 활동을 하였다.

 

조선시대의 조운제도는 고려시대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전국의 주요 바닷길에 조창(漕倉)을 설치하고 20여 척에서 많게는 63척의 조운선을 배치하였다.

 

 

 

순조(1834년)시대까지는 전통적인 수군의 군함이 맥을 이어왔으나 고종시대(1864년)부터 쇠퇴의 길을 들어선다.
셔먼호(1866년),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사건(1875년)을 치르면서 고종32년(1895년)에는 조선수군이 해산됨으로써 조선시대의 수군과 함선은 그 유구한 역사의 맥이 끊어지고, 민간의 어선, 상선만이 60년대까지 조선술의 맥을 미약하게 이어왔다.

 

[참고자료 : 현대중공업,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해양과학교실, 『우리배의 역사』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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