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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바위는 병영면 동남쪽 삭양리 백양마을과 장흥군 경계지점에 있는 동굴이다.
이 굴 앞에서 불을 피우면 장흥의 벽재뒷등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고 하니 이 굴의 길이가 얼마나 긴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굴은 병영성 축조 이전부터 있었다고 하니 그 역사는 알 길이 없으나 꽤 오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기가 지금도 그렇게 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아무튼 그런 전설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굴 안에는 흉악하고 무서운 ‘으슴’이 살고 있었으니 공포의 존재였다고 한다.
그 동굴속에서 살았다는 ‘으슴’이라고 불리는 큰 구렁이가 용이 되려고 노력 중이던 바 '여의주'를 얻지 못하여 용이 되지 못하고 산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으슴이 동굴에서 나와 산밑을 흐르고 있는 강물에서 놀기를 좋아하며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이 곳이 장흥과 유일한 통로였던 탓에 교통이 두절되는 형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인명피해도 컸으려니와 물자의 집산지요, 물물교역의 중심지인데다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병영은 모든 면에서 마비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으슴 퇴치를 관가에 호소하였으나 관가에서는 속구무책으로 주민들의 탄원에 대해서도 귀를 막고 타개책을 강구치 않으므로 백성들의 희생은 날로 증가되고 경제 상태는 악화되어 일대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무렵 굴바위 근처 백양리 뒷산에 백양사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는데, 그 절에는 명승 시철화상이 도를 닦아 활인불이라고 칭하여 왔다.
시철화상은 이 비참한 소식을 듣고 중생 구원을 위하여 월출산에 올라 목욕제계 한 후 백일산제를 정성껏 올리고 지성을 다하여 백일만에 큰 힘을 얻었다.

 

시철화상은 뛸 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와 고향에 돌아온 즉시 으슴 퇴치의 방안을 궁리한 끝에 으슴이 자주 나타나는 강변에 흰옷을 입은 허수아비를 세워서 마치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한 곳에 숨어서 으슴이 나타나기를 있었다.

 

강물이 꿇어 오르고 물이 뒤집히며 큰 물결이 일어나더니 마침내 으슴이 나타나서 허수아비를 발견하자 사람으로 오인하고 맹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크고 긴 구렁이를 먼 발치로 바라보던 주민들은 너나없이 크게 놀라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얼어붙은 말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으슴이 허수아비를 한입에 삼키려고 벼르던 끝에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다시 물속으로 되돌아가려는 순간 산속에 숨어 있던 시철화상은 자기의 생명을 던져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한손에는 쪽물들인 마포를 들고 다른 손에는 비후를 쥐고 소나무에 버티어 섰다.

 

다시 물속으로 되돌아가려던 으슴이 인기척을 듣고 한층 험한 모습으로 시철화상에게 흉악하게 덤벼들었다. 지옥을 방불케 한 처처참한 사투 끝에 드디어 으슴은 징그러운 몸둥이를 축 늘어뜨리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각 지방의 주민들은 매일 구름같이 모여들어 죽은 으슴을 구경하고 감탄함은 물론 신과 같은 시철화상에 대한 예찬의 소리가 날로 높아만 갔다.
수많은 장졸과 우수한 장비를 갖춘 관가에서도 속수무책이던 이 으슴을 시철화상 한사람의 힘으로 완전히 퇴치하여 주민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니 말이다.

 

화상의 신념과 덕행, 용기와 지략으로 으슴이 퇴치된 후 썩은 냄새가 어떻게 심했던지 백일을 두고 이 길을 다닐 수 없었다고 하다.

 

화상이 백양사를 떠난 뒤 그 절은 점차 쇠락하였고 드디어는 폐사되기에 이르렀으니 주민들은 죽은 으슴의 원한으로 절이 망하게 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도 백양사의 주춧돌이 남아 있어 영고성쇠의 지난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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