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체험관>하멜빌리지 체험>병영성 전설과 야사>병영 축성과 마병사

처음 전라도 병영은 광주에 있었으나 1417년(태종 17년)에 이곳 강진군 병영면으로 옮겼는데, 이는 왜적들의 침략이 잦아 연안 가까이 군대를 배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영성은 일명 설성, 세류성이라고도 불려지는데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태종 때의 병영성 이설당시 전라병사는 마천목(1358-1431)이었다. 그는 이웃 장흥출신으로 조부되는 마치원은 장흥 수령성을 축조하기도 하였고, 부친 마영 역시 왜구의 침탈을 막아 싸웠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천목 병사는 병마절도사영(병영)을 옮기는 일을 맡아 현지의 지형을 상세히 살피게 되었다.

 

아마도 이때 마병사는 옛 도강현의 치소가 있었던 병영면 하고리 일대와 지금 『개성터』라고 불리우는 지점을 저울질하며 축성의 방략을 짜고 있었던 것 같다.

 

일설에는 마병사가 처음 박동리와 하고리 사이의 개성터를 잡고 성축을 진행하다가 중도에 성터를 쌓기에는 마땅한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중단 하였다고 한다.
이 개성터의 초석들을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그 흔적을 일렬로 확인할 수 있었으나 농지정리로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병영터를 물색하던 마병사가 하루는 일망대에 도착해 이 일대를 둘러보다가 문득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백발노인이 앞에 나타나 활을 내놓으면서 활을 당겨보라 하므로 활을 받아 꿈속에서 활시위를 당겼다고 한다.

 

시위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잠깐 졸고 있는 틈에 꿈을 꾼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꿈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꿈에 화살이 날아간 자리를 찾아간즉 이상스럽게도 그곳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마병사가 곰곰이 주위를 둘러보니 화살이 박힌 곳은 족히 동헌이 앉을 만한 곳이었다.
그는 이곳을 병영의 중심으로 작정하고 성축을 할 범위를 요량해 보았으나 또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고민을 하면서 하룻밤을 뜬 눈으로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눈이 수북이 쌓였는데 이상하게도 화살이 꽂혔던 동헌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금을 그은 것처럼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는 이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둘러보면서 성곽의 범위로 적당함을 바로 알게 되었다.

 

그는 이에 "옳거니! 이것은 신께서 내게 성곽둘레를 알려준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병사들을 시켜 여기에 성을 쌓아 올리니 어떤 다른 성에 비하여도 손색이 없는 튼튼하고 방어에 합당한 위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병영성은 일명 설성이라고도 불려지는 것이다.

 

한편 병영성은 세류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병영성 주변에 버드나무들이 많이 늘어선 곳에 있다하여 불려지는 별명이고, 지금도 부근의 하천이름을 세류천, 다리 이름을 세류교라 부르고 있다.

 

 

마병사와 관련된 전설은 이밖에도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다.

 

이는 1895년의 『병영영지』에 기록되기도 한 것으로 창설당시 마병사가 일망대에 올라가서 활을 당기면서 말하기를 "후세에 활쏘는 자들 중에서 내가 쏜 곳까지 미치는 자가 없을 것이다. 또한 적의 화살도 이르지 않을 것이니 내 화살이 떨어진 곳에 성을 쌓도록 하라" 하여 그곳에 성을 쌓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사또샘 또는 어사샘이라 부르는 샘이 서쪽 성 밖에 지금도 있는데 마르지 않기로 유명하며 병마절도사 전용샘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위치:체험관>하멜빌리지 체험>병영성 전설과 야사>병영 축성과 마병사 인쇄하기



카피라이트로고

이용안내 개인정보보호정책 홈페이지개선접수
뷰어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