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체험관>하멜빌리지 체험>하멜의 흔적>하멜일행의 후손>후손의 흔적
   

1663년과 1666년 사이에 존재가 사라진 6명과 1차 탈출에서 잔류한 8명중 병사했다고 했던 1명(일본에서 하멜일행에 대한 심문이 있었을 당시 잔류 8명에 대한 기록 중에 나오는 Jan Claeszen으로 그는 요리사였으며 하멜일행 탈출당시 남원에 거주했다고 함), 모두 합해서 7명이 조선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황과 함께

  • 그들이 약 7년간 거주했던 강진의 병영면 일대에 하멜일행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유적지가 남아있는 점.
  • 그들 가운데 조선여인과 결혼해 후손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고 하는 현지주민들의 증언.
  • 강진병영 사람들이 네덜란드 나막신과 모양이 흡사한 나막신을 신었고, 나막신 제조에 관련된 전승이 강진일대에 많은 점.
  • 강진에서는 한국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관개시설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네덜란드에서는 굉장히 일반적인 것이라는 점

등으로 보아서 사라진 7명의 조선정착은 무리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최초의 남씨 족보가 남구만에 의해 제작될 당시 하멜 일행은 남씨족보에 편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계열에서는 나름대로의 가승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의령남씨 대동보에 분산 입록되었다. 이들은 의령남씨 충간공파에 200여호 1000명이 현존하며 사천백공파에 150여호 800명이 현존한다.

 

이들은 초기에는 강진군 병영면을 중심으로 세거하였으며 이후 1670년을 전후하여 여천, 순천지역에 잔류하였고 다른 일파는 60년이 지난 1730년경 전라도 나주지역으로 집단 이주 하였다.
남원과 여수, 순천의 계파는 앞의 충간공 남지의 5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후대에 입록되었다. 이중 김일성을 보좌한 북한 노동당 남일은 사천백공파의 후손으로 입적되었다.

 

이들 가계에서 타가문으로 출가한 성씨는 주로 배씨, 허씨, 양씨, 강씨, 마씨 등이며 이들 가계출신도 비록 모계에 의해 형성된 성씨이기는 하지만 피부색, 골격 등에서 서구인의 풍채가 현재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음이 조사되었다.

 

한편 현재 강진에는 하멜일행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3명 거주하고 있으나 이들은 위의 충간공파, 사천백공파의 집단이주시기에 타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현지에 잔류한 일파로 추정되며 실재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족보류에도 입록이 되어 있지 않다.

 

[자료제공 : 족보학전문연구소, “잔류인원 변동상황을 통해 본 하멜일행의 후손에 관한 고찰” ]

 

 나의위치:체험관>하멜빌리지 체험>하멜의 흔적>하멜일행의 후손>후손의 흔적 인쇄하기


카피라이트로고

이용안내 개인정보보호정책 홈페이지개선접수
뷰어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