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체험관>하멜빌리지 체험>하멜의 흔적>하멜일행의 후손>인원변동 상황
   

 

년 대 내 용 인원변동 상황
1653년 7월 네덜란드인 하멜 무역선 스페르붸르(Sperwer)호를 타고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함. 64
1653년 8월 제주 남해안 상륙(선원 64명중 28명 사망하고 36명만 상륙함)
상륙지로 추정되는 곳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해안
하멜일행은 광해군 유배지였던 곳에 수용되고 이전에 조선에 표류해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벨테브레)이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온다.
36
1654년 일행중 6명이 탈출시도- 잡힘 36
1653년 8월 제주 남해안 상륙(선원 64명중 28명 사망하고 36명만 상륙함)
상륙지로 추정되는 곳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해안
하멜일행은 광해군 유배지였던 곳에 수용되고 이전에 조선에 표류해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벨테브레)이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온다.
36
1654년 5월말~ 제주를 떠나 해남-영암-나주-강진-입암산성-정읍-태인-금구-전주-여산-은진-연산-공주-과천-서울로 호송된 후 각 훈국에 배치되어 분산해 서울에서 거주하도록 함.
호송 중에 영암지역에서 한명 병으로 사망.
35
1655년 3월 하멜 일행 중 2명(헨드릭얀스, 헨드릭 얀스보스 : 조선명으로 남북산*, 남이안*)이 청나라 사신과 접촉,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며 소동을 일으킴.
이후 이일로 하멜일행을 둘러싸고 청나라 쪽에서 문제를 삼게 됨. 소동을 일으킨 두명은 감옥에서 병사했다고 알려짐.
(*남북산은 조선완조실록에, 남이안은 훈련도감 기록에 나타남)
33
1656년 3월 결국 청나라와의 문제로 하멜일행 전라도로 귀양 33
1656년 ~ 1662년 전라도 강진에 수용됨.(병영면 일대에 거주한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이 남아있음)
이 7년 사이에 11명이 전염병 등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임.
33(-11)
1663년 2월 하멜일행을 3군데로 분산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져 여수, 남원, 순천으로 분산됨.
여수좌수영 12명, 순천 5명, 남원 5명
22
1666년 9월 5일 여수좌수영에서 하멜과 항해사 얀피터슨 등 8명 탈출.
(여수좌수영의 3명과 순천에서 온 3명)
22-16=6?
1666년 9월 12일 교토를 거쳐 나가사키 도착 16-8
1666년 9월 14일 일본 측의 심문. 이후 1년간 데시마 거주 8
1667년 10월 22일 하멜 일행 나가사키에서 출발. 바타비아로 향함 8
1668년 3월 ~ 4월 일본사신은 남아있던 나머지 8명의 송환을 요구하는 서신을 작성해 조선측에 전달. 8
1668년 8명중 1명(Jan Claeszen: 요리사*) 사망하고 잔류자 7명의 생존을 확인시키는 조선의 답장이 일본에 전달됨. 8-7=1?
1668년 생존자 7명이 쓰시마 섬에 도착- 나가사키로 이송됨. 조선에 남았을 가능성 있는 사람은 7명?
1669년 생존자 7명 바티비아에서 하멜과 합류  
1670년 전원 네덜란드 귀국 15명 귀국

 

 

데시마의 무역기지 사오간인 윌헴 볼헤르의 <데일리 리지스터지>의 1666년 9월 기록에서는 “그들(하멜일행)중 20명이 조선에서 죽었고 나머지 8명이 각기 다른 지방에 살고 있다...(중략)”라고 한 점으로 보아 하멜이 탈출 후 일본에서의 심문에서 36명중 20명이 사망했다고 진술했을 수도 있으나 남아있는 일본 측 심문기록이나 하멜 일지 상에 이들 20명에 대한 구체적인 생몰기록은 찾을 수 없다.

 

한편, 1668년 9월의 VOC(동인도 연합회사: 하멜일행 등이 소속된 회사)의 공식문서에서는 하멜과 그 일행이 탈출하기
2년 전에 Jan Claeszen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것이 어떤 자료에 기초한 것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

 

 

 

Nicolaes Witsen(VOC의 전 통치자로 하멜일행들과도 만났던 것으로 보임)이 1705년에 쓴 기록이다. 휘첸이 쓴 에 의하면 당시에도 Jan Claeszen은 생존해 있었으며 결혼해서 자식을 가지고 조선에 정착하고 싶어 했다고 적고 있다.
조선이 이를 숨긴 이유는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이며, 눈에 띄는 점은 Jan Claeszen을 언급하면서 조선에서 결혼해 자식을 낳은 사람이 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돌아온 7명에 관해 “그들은 자식과 부인들을 떠났다.”라고 적고 있는 점에서 당시 조선에 정착한 이가 Jan Claeszen뿐만이 아니라 몇 명 더 있을 가능성과 더불어 네덜란드로 귀국한 이들이 조선 체재시에 남긴 가족들(후손들)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항해에 나선 1653년 총 인원 64명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상륙한 인원은 36명이었다.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이동되던 1654년 영암에서 이들 중 한명이 병사해서 인원은 35명으로 이후 1655년의 청국사신과의 소동에서 2명이 사망, 33명이 된다.

 

소동이후 전라도로 이동 배치된 이들은 전라도 강진 병영에서 거주하던 7년 사이에 전염병 및 기근으로 11명이 사망한 것을 파악되며(이것에 관해 하멜이 일본에서의 심문에서 이들 11명이 사망했다고 진술한 기록이 있다.) 1663년 이들이 다시 순천, 남원, 여수로 분산수용 될 때의 인원은 22명으로 줄어있었다.

 

하멜일지 상에는 기록된 바가 없으나 이들이 탈출을 시도했을 때 파악된 인원은 총 16명으로 그 중에서 8명이 1666년 나가사키로 탈출, 성공했다.(8명만이 탈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이 언급이 없으나 다만 모두 이동하기에는 선박의 크기가 작았고, 조선군영의 감시를 일정기간 피했어야 했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후 하멜이 조선에 남아 있다고 보고한 8명중 7명이 1668년 나가사키로 송환되었다.(1명은 병사했으므로 송환 불가능하다는 조선 측의 서신이 일본에 보내어짐)
이들 16명에 대한 신상명세는 이들이 나가사키에서 받은 일본 측의 심문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제공 : 족보학전문연구소, “잔류인원 변동상황을 통해 본 하멜일행의 후손에 관한 고찰” ]

 

 나의위치:체험관>하멜빌리지 체험>하멜의 흔적>하멜일행의 후손>인원변동 상황 인쇄하기


카피라이트로고

이용안내 개인정보보호정책 홈페이지개선접수
뷰어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