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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 중 강진현 장흥진감도왜적은 14~16세기에 걸쳐 그 침략이 극심하였는데 해안을 끼고 많은 도서를 갖고 있는 호남연해 지방은 빈번한 침략의 대상이 되었다. 이곳은 더구나 곡창지대였기 때문에 그 피해의 정도는 더욱 심한 바가 있었다. 이중에는 연해지역 뿐 아니라 내륙지방도 포함되었으며 거의 모든 지역이 왜적의 침입에 노출되어 있었다.

 

왜적의 대규모 침입 가운데 하나인 을묘왜변은 명종 10년(1555) 5월11일 왜선 70여척이 영암의 달량포 밖에 침입, 이진포와 달량포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쳐들어옴으로써 본격화되었으며 어란포, 남도 금갑 두보가 차례로 함락되었다.
임진왜란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쟁에서 왜구들은 이곳으로 쳐들어와 강진, 해남, 영암, 장흥 등지에 수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때 병마절도사였던 원적과 장흥부사 한온은 왜적에 의해 살해당하였고, 영암군수 이덕견은 포로가 되었으며, 병영성도 함락되어 폐허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병영은 전면적 중수를 통해 면모를 일신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맞게 된다.

 

 

 

을묘왜변 때 입은 피해를 감안한다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두 큰 전쟁을 겪었으나, 이때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것은 을묘왜변 때와는 달리 그 대비가 넉넉했고, 무엇보다도 전라도 지방은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명장의 활약에 힘입은 탓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출신인 김억추, 황대중, 김덕란, 염별 장군 등의 빛나는 활약을 비록한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는 울돌목에서 이순신에게 크게 패한 왜군이 그 보복전으로 강진, 해남, 영암 등지에 상륙하여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병영성도 이를 막기 위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를테면 전라병사 이복남이 병영군사를 이끌고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여 순절한 것이 그것이다.

 

 

 

다만 임진왜란 직후 장흥으로 이설되었다가 다시 강진으로 복귀되었다.
이후 병영성은 약 300여 년 동안 그 임무를 수행하다가 1894년 12월10일 결국 농민군에 의해 함락되어 최후를 맞는다.

 

1866년부터 화포과를 운영하여 적극적으로 포군을 양성했던 전라병영은 실제로 실제로 1894년 농민전쟁이 일어나자 농민군 진압에 선봉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해남, 장흥의 동학농민들은 먼저 장흥읍성을 공략, 장흥부사를 죽이고 여세를 몰아 강진읍성과 병영성을 함락시켰다.

 

동학농민군과 최후의 격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전라병영은 거의 잿더미로 변하였으며, 이듬해인 1895년에는 일제의 영향을 받은 군제개편에 따라 병영이 폐치되어 500여 년 역사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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