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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읍지 중 병영성
  • 둘레 : 2,820자
  • 높이 : 18자
  • 옹성 : 4~12개소(성문 밖의 성을 지키기 위한 작은 성)
  • 포루 : 2개소(포를 쏘는 누각)
  • 연못 : 5개소
  • 우물 : 9개소
  • 치첩 : 320자(성위 낳게 쌓은 담)

전라병영성 자체는 병영 설치 당시 병사 마천목에 의해 축성되었다.
오늘날의 유적을 감안할 때 병영성은 대략 남북으로 긴 장방형 구조였을 것으로 보이며 둘레 2,820척 높이 18척으로 작은 읍성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성문은 사방 네 곳에 있었고 특히 남문은 정면 3칸 규모의 중층 형태로 진남루로 불려진다. 부속 방어시설로는 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여첩이 대략 2m 간격으로 삼~사백여 곳에 설치되었고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든든히 하기 위한 옹성이 시기에 따라 4~12개소가 마련되었다.

 

 

 

이밖에도 성벽의 일부에서 접근하는 적을 빨리 관측하고 정면이나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격퇴시키기 위한 도 갖추어져 있었다. 치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데 현재 유적에서 8군데에 그 흔적이 발견되었다.
급수시설로는 우물이 4~9개소, 연못이 2~5개소가 각각 존재하였다.

  • 객사(중앙관원 접대 숙소) : 1417년 신축 동헌과 서헌이 있었다함.
  • 운주헌(병마절도사집무실) : 1659년 신축
  • 연희당(글 읽고 쉬며 술 마시던 곳) : 1420년 신축
  • 응수당(연희당 서쪽 성벽에 위치) : 1732년 신축
  • 진남루(원래이름 초루) : 1634년 신축
  • 남문(2층 누각) : 1417년 신축
  • 공무루(객사의 3문) : 1702년 신축
  • 제승루(운주헌의 외3문) : 1745년 신축
  • 독제각(군기 보관하는 곳, 서쪽에 위치)
  • 장대(장수가 지휘하는 곳, 남쪽2리에 위치)
  • 조량고, 조적창(곡식 보관창고)
  • 관청고(관청물품창고)
  • 진휼고(재난시 나눠줄 물자 곡식창고)
  • 화약고, 군기고, 병고
  • 남당창, 동창(군량미보관고)

병영성 내부에는 방어시설 외에 각종 관아와 누각들이 들어서 있었다.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객사는 동헌과 서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서헌은 청심각 혹은 망미루로 불러졌다.

 

객사는 홍살문을 지나 내외삼문으로 들어가는데 그 가운데의 하나가 공무루이다. 객사 뒤쪽에 있었던 운주헌은 병사가 집무를 보던 아사로 여겨진다. 운주헌의 외삼문은 제승루라 하였고, 병사의 휘하인 우후가 집무를 보던 아사인 적만헌이 운주헌과 함께 건립되었다.

 

운주헌의 서쪽에는 병사의 휴식과 연회장을 겸한 연희당이 있었고 그 서쪽 성위에는 누각 형태의 응수당이, 성 남쪽에는 제각이었던 독제각이 건립되어 있었다. 성 동쪽에는 아전들의 이청과 무기를 보관하는 군기고가 있었으며 군기고 안에는 간겸당이 들어서 있었다.

 

문헌상의 기록 외에도 현존하는 관덕정을 비롯해 수많은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일일이 다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라병영의 최고 지휘자인 병마절도사는 종 2품직으로 임기는 2년이 원칙이었으며 보좌관이었던 병마우후는 종 3품직으로 임기는 2년이었다. 전라병사의 임명기록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대략의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다.

 

이 가운데는 병영성 건설을 주도하고 태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마천목과 같은 병사가 있었는가 하면 개인 비리로 탄핵되는 병사들도 다수 존재한다.
전라병영에는 병사와 우후 외에도 9명의 예하군관이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화사와 상납 약재를 점검하는 심약도 1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병영의 군병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칠백여명의 정군, 수성군, 조역군이 기록되어 있으나 임진왜란을 전후로 대략 한번에 350여명이 입번하다가 대폭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병영영지>에는 일만여 명의 납포군과 오백여명의 직할 군병이 존재한 것으로 되어 있다. 갈수록 실제의 군병보다 재정확보를 위한 납포군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병영의 재정은 중앙관청 상납분과 본영 운영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비변사를 비롯해 중앙의 5개 관서에 해마다 정기적으로 상납하는 세액과 국가의 경사시 따로 올려 보내는 진상물, 그리고 병영 자체 경비는 전라도의 각 군현에서 올라오는 전곡이나 현물로 충당되었다. 그 중 나주, 영암, 강진 등이 병영에 큰 부담을 지고 있었는데 특히 병영이 위치한 강진은 5개 면이 병영관할로 따로 소속되어 있었다.

 

강진현 전체 호구의 20%가 넘는 이들 주민은 병영의 각종 부세 부담을 안고 있었고 병영 수축과 같은 노역에도 동원 되었다. 병영의 군량은 조양창 등 창고 운영을 통해 조달되었고 수인산성 별비미 등도 각 읍에 분급되어 그 이자를 재정에 충당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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