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하멜정보관>하멜연표>1657~1666년
   
년 초
전라병사가 직무상 과실로 면직되었으나, 서울의 높은 자리로 승진
 
02월
신임 전라병사가 왔으나, 일행에게 잡일로 괴롭힘
 
09월
신임병사가 심장마비로 사망
04월 말
전라병사가 전출되었고, 신임 병사가 도착
04월
효종이 승하하여 현종이 뒤를 이음
   
년 초
전라병사가 교체
 
혹독한 가뭄으로 조선인 수천 명이 사망
 
03월09일
전라병사 이태연의 보고를 통해 강진에서 다른 고을로 이송시킬 것이 조정에서 윤허됨 (『현종실록』). 즉 전라도 내 분산 거주가 결정. 『하멜보고서』에는 2월말에 좌수영, 순천, 남원으로 이송 결정이 내려졌다고 기록되어 있음
03월 초
강진의 병영에서 좌수영 순천, 남원으로 분산 이동
 
03월 중순
하멜과 동료 12명은 여수 좌수영에서 거주하게 됨
 
하멜은 여수에서 계속 생활
 
범선을 구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임. 그러나 번번이 실패함
07월
신임 자방관이 부임. 탈출하기 위한 선박을 구입
 
09월 04일
탈출을 감추기 위해 일행이 흥겹게 놀고 있는 척을 함. 이날 달이 지자 탈출을 감행
 
09월 05일
진로를 남동쪽으로 잡고 항해를 계속
 
09월 06일
일본의 히라토(平戶 ) 부근에 도착
 
09월 07일
일본의 고토(五島 ) 열도 부근에 도착
 
09월 08일
일본인들에게 발견 되었고 , 그들에 의해 연행됨. 그곳은 고토(五島) 중에 가미고토(上五島)의 나마(奈摩)라는 마을이었음
 
09월 09일
9일부터 11일까지 배 안에서 엄중한 감시를 받음
 
09월 12일
나가사키(長崎) 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부근 어촌에서 정박
 
09월 13일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 나가사키에 도착
 
09월 14일
나가사키 항구에 상륙하여 나가사키 봉행의 조사를 받음. 여기서 당시의 나가사키 상관장이었던 훠허르(Willem Volger) 상관장과 그 밖의 네덜란드 상무원들을 만남
 
10월 01일
훨허르 상관장은 데지마를 출발하여 그달 23일에 일본 해협을 떠남
 
10월 25일
다시 나가사키 부교의 재심문이 이루어짐
 
11월 19일
왜관에 있던 차왜(일본 측 사절 ) 귤성진(橘成陳 )이 하멜일행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탈출하였으니 , 머지않아 일본 측의 문의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 귤성진은 일본 이름으로 야록쿠자에몬 (井手彌六左衛門 )이다 . 조정에서도 하멜일행의 탈출 사건을 알게 됨
 
11월 20일
비변사는 하멜 등 8명이 일본의 고토에 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지방 관리로부터 보고가 없다고 하여 심히 놀라고 있었으며 이 탈출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처리할 것을 진언함
 
11월 22일
하멜일행의 탈출을 영의정과 승지가 확인하여 진언하였고, 이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전라도 지방관에 대한 처벌을 결정함
 
12월 20일
하멜일행에 대한 전라감사의 보고와 지방관의 처벌에 대한 처리를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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