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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선의 종교 중에서도 불교에 만큼은 우호적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라도에 체제하고 있었을 당시 주변의 사원이나 절로 자주 나들이를 가고 있었고, 또 승려들도 그들의 모험담을 듣기를 간절히 원해 이야기로 밤을 새운 적도 있다고 『하멜보고서』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사지내는 것을 우상 숭배의 한 형태로 파악하고 있다거나, 조선의 유교에 교리와 문답이 없다고 한다거나, 모든 국민들이 이미 우상숭배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 논쟁이 필요 없다고 한 부분들에서 철저한 조선의 유교주의가 하멜 일행에게는 그러한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음이 흥미롭다.

  • 백성들은 여러 우상을 섬기는 등(아마도 성황당 등의 미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 이교도를 믿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로 우상보다는 그들의 권세가를 더 숭상한다.

  • 고관과 양반은 우상숭배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이 우상 위에 군림하려는 자만심이 강했다.

  • 명절(제삿날) 때마다 일반 백성과 농민들이 와서 우상 앞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우상 앞에 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 공양물의 하나인 행이 있는 나무토막(향목)을 태운다. 그리고 나서는 절을 한 차례 한 후, 더 이상의 절차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떠난다.

  • 그들은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이승에서 복을 받을 것이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믿는 정도이며, 설교라든지 교리 문답 같은 것은 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고, 서로에게 자기 믿음을 강요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 다들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또 전국에 걸쳐 이미 우상숭배가 만연된 상태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특이한 것은 당시 불교와 사원의 폐단성을 “매춘굴이나 주막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삼 강조하는데, 이른바 사원이라는 것은 다 그런 식이며, 스님 역시도 주색이라면, 무엇이든 사족을 못 쓰는 판국이었다.”고 까지 언급하고 있어 과연 하멜이 조선에서 어떠한 체험을 하였기에 이러한 표현을 하고 있었을까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이점 또한 당시 조선의 불교로 인한 폐단을 어느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직시하여 지적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여기에서 하멜의 조선 불교에 대한 기술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승려는 하루에 두 번 우상(불상) 앞에서 공양과 예불을 드린다. 축제일마다(4월초파일 등) 많은 사람들이 절에 오는데, 승려들은 모두 징과 북을 치고 다른 악기들도 연주한다.

  • 사원과 사찰은 조선에 상당히 많으며, 여러 곳에 있는데 모두 경치가 좋은 산 속에 있고, 각각 그 해당된 고을의 통제 하에 있다. 어떤 사찰에는 500~600명의 승려가 있는 곳도 있고, 어떤 고을에는 3000~4000명의 승려가 모여 사는가 하면, 그들은 10~20명 혹은 30명씩 한 숙소에 머무르며, 때로는 더 많고 적을 때도 있다.

  • 각각의 거주지에는 최고 연장자(주지승)가 통솔해간다. 어떤 승려가 과실을 범하면 연장자가 볼기 20~30대를 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대한 범죄일 경우 지방관에게 인계한다.

  • 원하는 자는 누구나 승려가 될 수 있고, 적성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승려가 부족한 편은 아니며, 그 다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신분층에 속한다. 그들은 국가에 많은 공물을 바쳐야 하고, 노역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거의 공노비와 다름없다. 그러나 고위급의 승려는 높은 학식 때문에 존경을 받으며 나라의 지식층의 하나이다. 그들은 국왕의 스승(왕사)라고 불리며, 국가의직인을 지니고 다니면서 사찰을 순시할 때 일반 치안관처럼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여행을 하며, 그 위세가 당당하다.

  • 승려는 생명을 지닌 것이나, 생명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전부 삭발하고 있으며, 여자와의 대화도 금지된다. 이 규칙을 어긴 자는 벌로서 볼기 70~80대를 맞고 사원에서 추방당한다.

  • 어떤 승려이던지 정에 들어가 삭발한 후에는 한쪽 팔에 낙인을 찍는다. 그래서 그들이 승려라는 것을 항상 알 수 있다. 보통 승려들은 노동, 상업, 혹은 동냥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 승려들은 항상 많은 소년들을 모아 놓고 일고 쓰기를 가르치는 일에 열심이다. 이 소년들이 머리를 깎으면 그들은 스승을 섬기는 동자승이 된다. 동자승들이 벌거나 얻어 온 물건은 모두 스승에게 바치며, 스승이 그에게 자유를 줄때까지는 그렇게 한다. 한 승려가 세상을 떠나면, 그의 동자승이 상속인이 되어 복상을 해야 한다.

  • 불상 앞에서의 예불과 음식규칙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그래도 다른 차이를 보이는 승려가 있는데, 이들은 삭발도 하지 않으며, 결혼도 할 수 있다.

  • 사원과 사찰은 부유한 고관이나 서민 신자들에 의해 건축된다.

  • 많은 승려들은 아주 옛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로 말했지만 하늘로 올라가려고 탑을 세우고, 그것을 타고 극락으로 기어 올라가려고 애를 쓴 나머지 온 천지가 이렇게 변했다고 한다.

  • 양반들은 유흥삼아 창녀(기생)들과 다른 권속들을 거느리고 종종 절을 찾고는 했는데, 그것은 절이 산이나 숲 속에 있어서 경치와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절이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건물로 여겨지지만 절이라기보다는 매춘굴이나 주막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삼 강조하는데, 이른바 사원이라는 것은 다 그런 식이며, 스님 역시도 주색이라면, 무엇이든 사족을 못 쓰는 판국이었다.

  • 서울에 있었을 때 여승이 있는 절 두 곳을 목격했는데, 하나는 양반집 처자들을, 다른 한 곳은 서민 출신 부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들도 승려들과 같은 식으로 머리를 깎고, 불상에서 의식을 행했다. 이곳은 국왕과 고관들의 재정적 후원으로 운영되었으나, 4~5년 전에 현재의 국왕이 폐쇄하고 여승들에게 결혼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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