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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네덜란드인 송환교섭이 조선과 일본 간에 일단 매듭이 지어졌으나, 여기에 이렇게 빨리 송환이 결정된 것에는 조선과 일본 양국 간에 어떠한 이유가 있을까?

 

 

① 일본에 대한 회유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은 각종 명목으로 교섭해오는 쓰시마번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있었으며, 네덜란드인 송환교섭도 또 다른 하나의 교섭명목이 될 가능성이 있어 그를 배제하기 위해 신속히 일본의 송환요청에 응해 잔류 네덜란드인을 인도했다.

 

또한 당시의 왜관이전에 대해 조선은 강경하게 허락을 거부했고, 이러한 일본 측을 회유시킬 필요성이 있었으며, 그 회유의 방법이 일본의 송환교섭에 무리 없이 응해주는 것이었다.

 

② 청과의 외교적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인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1666~68년을 전후한 시기는 동아시아에 파급을 미친 명청교체기의 혼란이 어느 정도 정착되는 시기였으며, 조청관계도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다.
그 상황에서 네덜란드인의 조선 체재가 초래하는 외교문제(예를 들면 서울에서 청국 사신에게 일으킨 소동)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정치적 해결책이었다.

 

① 쓰시마는 우선 막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입장으로서, 막부의 권위를 유지시키기 위해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송환을 달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문에 네덜란드는 일본의 조공국이라는 표현까지 구사해가며 송환을 달성시키려 했다.
이러한 송환교섭의 성공은 조선 외교를 위임받은 쓰시마번의 임무였으며, 반대급부로서 조선무역의 독점이익을 계속적으로 인정받는 선행요건이었던 것이다.

 

② 막부입장에서 본다면, 통상국(通商國)이었던 네덜란드를 위해, 조선에 억류되어 있는 그들의 국민을 일본으로 송환시키는 것은 막부의 권위와 면목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물론 네덜란드 측의 막부를 통한 송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송환을 성공시킴으로서 막부의 네덜란드에 대한 입지는 더더욱 강해졌다. 또한, 동북아시아 해역에서 일본의 정치적 입지를 네덜란드에 과시한 행동이기도 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조선 잔류 네덜란드인의 일본 송환은 조선과 일본측의 외교적 환경과 현안문제들, 그리고 일본과 네덜란드의 외교관계가 복합적으로 연동되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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