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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측은 답서의 내용이 오직 네덜란드인들이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것에 일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유로 개정요구하였다(『접왜사목록초』4월조).

 

결국, 회답서계는 승문원에 명해 개정된 것을 내려 보내게 되었는데, 그 서계의 내용은 『본방조선왕복서』권23의 「국문아란타표인야소사종부회답(鞠問阿蘭陀漂人耶蘇邪宗否回答)」에 실려 있다.

 

.....언급되고 있는 만박(蠻舶, 하멜 일행이 타고 온 스페르붸르호)은 지난 계사년(1653)에 전라도에 표도해 왔는데, 그 반수는 익사하고 생존자는 36명으로, 그 용모와 언어·문자를 알 수 없었으며,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또한 갑신년(1644)년에 진도에 표도해 와 귀국에 해송(解送)한 자들과도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이곳에 체재하기를 14년이었는데, 단지 물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하여 다른 기술은 없었다.
만약 민중을 요혹(妖惑)하는 일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우리의 역내(域內)에 머물게 하겠는가.
더욱이 귀주(貴州)의 야소당류(耶蘇黨類, 그리스도교)에 대한 금제 요청에 따라서 그 린호(隣好)를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한 적은 없다. 또한 그들이 만약에 사종(邪種)이라면, 당연히 귀국으로 피하는 것을 두려워해, 배를 훔쳐 스스로 사지(死地)로 향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조선 정부는 하멜 일행의 그리스도교 관련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조선에 네덜란드인을 억류한 것에 대한 정당성주장했다.
이러한 조선의 태도는 앞에서 언급한 동래부사 안진의 치계, 그리고 비변사의 진언에 보이는 문의에 대한 대응책에 기준을 둔 것이었다.

 

 

 

타지마 사콘에몬 등의 차왜는 조선의 답서를 가지고 6월8일 쓰시마에 도착하였는데, 타지마의 병으로 인해 이와이가 조선의 답서를 지참해 가지고 왔다.
이후에 전개되는 일들을 「아란타인조선강표착지일건」의 기록으로 살펴보자.

 

쓰시마번은 이 답서를 막부에 보내는 동시에 문의에 대한 보고를 막부에 하였는데, 먼저 이 답서는 월번노중(月番老中, 월별로 업무를 담당하는 노중) 이나바 미나노카미(稻葉美濃守)에 보내졌다.
이나바는 “아란타는 수년 일본에 도해(渡海)하고 있는데, 이들 8명을 쓰시마에 인도하도록 전할 것이며, 도착한 다음에 는 나가사키 부교에게 넘겨야 한다.”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

 

그 후, 문의에 대한 조선 정부의 답서는 쇼군(將軍) 이에쯔나(家綱)에게 올려 졌고, 노중 이나바에 의해 이 건에 대한 지시가 쓰시마 번주에게 내려졌다.

그 지시 내용은 “아란타인은 수년 일본에 래항해 온 자들이다. 이 8명을 쓰시마에까지 넘겨받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답서에 대한 답서를 노중(老中)에게 명령하고 안서(案書)를 준비토록 지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쇼군의 지시에 대해 노중 이나바가 덧붙여서 “서한의 안문은 홍문원(弘文院)이 준비하고 있지만, (안문)그대로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서면(내용)의 취지만이 틀리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은 없으며, 쓰시마에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준비하라.”는 것이다.

즉, 조선관계에 관한 외교문서 작성에 막부가 쓰시마의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한 예를 「아란타인조선강표착지일건」의 기록으로 본다면, 노중 이나바는 네덜란드에 대해서 “아란타인들은 수년 일본에 도해(渡海)하고 있는데...”라는 표현을, 쇼군은 “네덜란드는 일본에 수년 내항(來航)하고 있는 자들이다.” 라고 하여 “도해(渡海)” 내지는 “내항(來航)”이라는 표현을 막부에서는 쓰고 있었는데, 쓰시마번이 예조참판 앞으로 답서를 보냈을 때는 “그들 만민은 오랫동안 본방에 내공(來貢)해 온 자들이다.”(『本邦朝鮮往復書』권23, 「爲阿蘭陀漂人再差?价書」)라고 네덜란드가 일본의 속국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다.

 

이는 이전에 문의가 있다는 정보를 이데 야록쿠자에몬(橘成陳)이 조선에 누설했을 때의 “속군(屬郡)” 이라고 한 것과도 괘를 같이 한다.

 

이렇듯 하멜 일행의 탈출에 관한 문의의 결과 잔류네덜란드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의심이 해소되었고, 이것이 쓰시마에 의해 막부에 보고되자, 막부(쇼군)는 쓰시마에 조선 잔류 네덜란드인의 송환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즉, 하멜 일행의 탈출사건으로 시작된 조선과 일본 간의 문의는 다시 송환교섭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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