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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보고를 들은 다음날 『승정원일기』 현종7년 10월 신미조에 의하면,
비변사는 하멜 등 8명이 일본의 고토에 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지방 관리로부터 보고가 없다고 하여 심히 놀라고 있었으며 이 탈출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처리할 것을 진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탈출자의 정확한 신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또한 10월26일에는 현종과 신하들 간에 일본 측의 문의에 대해 어떻게 답서를 보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행해졌는데, 그 내용을 『현종개수실록』현종7년 10월 계유조를 근거로 살펴보자.

 

상이 희정당에 나가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표류해 온 남만인(南蠻人)에 대해 답할 서계의 일을 물으니,
영상 정태화가 말하기를, “지난 해 청나라 사신이 나올 때에 남만인들이 갑자기 홍제교의 주변에 나와 갖가지로 호소하였기 때문에 전라도에 나누어 두었는데, 왜국으로 도망쳐 들어간 자들은 필시 이 무리일 것입니다.” 하고
승지 민유중이 아뢰기를, “신이 호남에 있을 때에 보았는데, 이 무리들은 연로에서 구걸하다가 신에게 호소하기를 저희들을 왜국으로 보내준다면 저희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도망쳐 왜국으로 들어간 것이 의심할 게 없습니다. 하자,
좌상 홍영하가 아뢰기를, “남만인이 타국으로 도주하였는데도 지방관원이 아직까지 보고하지 않았으니, 정말 한심스럽습니다.”하니 상이 본도에 명해 조사하여 아뢴 다음에 치죄하라고 하였다.

 

영의정 정태화는 일본에 도주한 무리는 본고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이전에 청국 사신 앞에서 소동을 일으킨 남만인들이라고 단언하고, 승지 민유중은 그 자신이 전라도에 있었을 때 하멜 일행은 걸식을 하고 있었으며, 일본으로의 송환을 간청한 적이 있다고 하여 그들이 일본에 도주한 것이 틀림없다고 진언하고 있다.

 

또한 좌의정 홍명하는 네덜란드인 8명이 타국에 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에 보고하지 않은 것을 진언해, 현종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함께 전라도 지방 관리의 처벌을 명했다.

 

그 후 이 명령에 의해 전라감사 홍처후는 세 곳에 분치되어 있던 네덜란드인의 상황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11월25일에 다음과 같이 조정에 보고했다(『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현종7년 11월 신축조)

 

“남원에 분치한 3명은 모두 관문 안에 있고, 좌수영에 분치한 8명 중에서 3명은 점호에 출석하였으나, 5명은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순천에 분치된 5명 중에서 2명은 점호에 출석하고 3명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동료와 보증인을 추궁하였더니, 그들은 8월초 6일에 목화를 구하러 간다고 하며 주위의 섬으로 갔는데, 지금까지 돌아오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생략)
즉, 그들은 탈주를 하였습니다. 뜻밖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해당 관리들은 그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좌수사 정영을 나문하여 정죄하여야 합니다.
순천은 그 당시에 이전 관리가 돌아오는 중이었고, 신임 관리는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전라도에서는 色吏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지금, 전라도에 엄형을 내린 후에 정죄를 묻는 것이 당연하오니, 이를 분부하심은 어떠신지요.” 하니 답하기를, “허락한다.” 라고 하였다.

 

전라감사 홍처후의 조사보고에서는, 남원에서는 도주자가 없으며 좌수영 5명과 순천의 3명이 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멜의 동료와 보증인을 심문한 결과 그들이 8월6일에 목화를 구한다는 핑계로 나가서 탈출한 사실도 명확해졌다.
즉, 이 보고로 인해 하멜 일행탈출사건정식으로 확인된 것이다.

 

 

 

정영은 1666년 4월20일부로 전라좌수사에 임명되었는데, 하멜 일행의 탈출사건을 책임을 지고 파면되었다.

또한 순천의 경우는 정세형이 부사로 부임하고 있었으나, 탈출사건이 일어난 것은 정세형이 새롭게 겸관에 명해진 다음 날이므로 그의 죄로 보기 힘들다는 현종의 의견에 따라, 그에 대한 처벌해졌다(『현종실록』현종7년 12월 기미조).
그러나 현종은 8·9월에 재임하고 있던 관리에 대해서는 탈출사건을 끝내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현재 부임하고 있는 관리를 처벌토록 하였다.

즉, 하멜 일행의 탈출 후에 순천에 부임한 부사가 중앙에의 탈출보고 불이행으로 처벌된 것이다.

 

 

 

물론 남원을 제외한 좌수영과 순천의 담당 색리(色吏)들이 처벌받았음을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하멜 일행의 탈출사건과 관련한 조선 내부의 문제처리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탈출사건은 조일간의 중대한 외교문제로 여전히 남아있었다.
더구나 조선으로서는 일본과의 교린(交隣)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것은 일본의 그리스도교 금제 정책에 대한 협조 요청에 응해 1644년 이후 의심스러운 이국선이 표착할 경우 왜관에 알려주기로 한 약속을 이행치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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