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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4일, 데지마(出島)의 네덜란드 상관으로 하멜일행이 인도되기 전에 나가사키(長崎) 부교(奉行)는 하멜일행을 직접 심문 조사했는데, 과연 어떠한 내용일까? 그 조사를 통해 일본 측은 과연 어떠한 정보를 얻어냈을까?

 

그 심문 조사는 전부 54개의 항목으로 매우 상세히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멜보고서』에는 그 조사의 문답 내용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정리해 보면, 난파선의 규모와 항해의 목적, 난파의 경위와 관련된 11개 항목, 조선에서의 생활에 관한 11개 항목, 조선의 군사·경제·풍습·종교에 관한 17개 항목, 조선의 대외관계에 관한 6개 항목, 탈출의 경위와 조선의 입장에 관한 13개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30.   일본 거주지(왜관)에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는가?
30.   그건 우리들에게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음.
31.   그들끼리는 서로 어떤 유통 수단을 쓰는가?
31.   수도에 사는 고관들은 은화를 유통 수단으로 상거래를 많이 하고 있으며, 평민들끼리는 그리고 다른 고장에서는 여전히 포목, 쌀 그리고 다른 곡물들을 교역의 매개로 하며, 각각 그 정해진 가치에 따라 상행위가 이루어진다.
32.   그들은 중국에 가서 뭘 교역하는가?
32.   그 곳에 인삼뿌리, 은 따위의 여러 품목을 내가는 반면, 우리가 일본에 가져오는 것과 같은 종류의 물품을 비롯하여 비단천도 들여온다.
33.   은광이나 다른 광산이 있는가?
33.   지금으로부터 수 년 전에 은광이 몇 군데 개장되었으며, 왕이 그 수입의 1/4을 차지한다. 그러나 다른 광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34.   그들이 인삼뿌리를 어떻게 찾아내며, 그것을 무엇에 쓰며 또 어디로 수출하는가?
34.   그 인삼뿌리는 북부 지역에서 발견되며, 그들에게는 의약품으로 사용되고, 매년 청국인들에게 공물로 상납되며, 상인들에 의해서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된다.
35.   중국과 조선이 대륙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35.   그들 말에 의하면 두 경계가 커다란 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겨울철에는 추위로, 여름철에는 사나운 맹수들로 말미암아 여행하기 위험하다고 한다. 따라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대부분 수로를 이용하고 겨울철에는 그 수로의 빙판 위를 걸어서 오간다고 한다.
36.   조선에서의 지방관 임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36.   모든 도의 관찰사들은 매년, 보통 지방관들은 3년에 한 번 교체된다.
37.   함께 모여 전라도에서 몇 년이나 살았고, 식량과 의복은 어디서 구했으며, 그 곳에서 숨진 자는 몇 명이나 되는가?
37.   병영이라는 곳에서 일행이 다 함께 7년 정도 살았고, 당시 매달 쌀 50카티를 배급받았으며, 옷과 부식은 선량한 주민들에게 구걸하는 식으로 나름대로 알아서 조달해야만 했다. 그 기간에 열한 명이 사망했다.
38.   왜 다시 다른 고장으로 이동됐으며 그곳의 이름은?
38.   1660년, 1661년 그리고 1662년에 가뭄이 들어 어느 한 고을에서 우리 배급을 다 충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마지막 해 국왕은 우리 일행을 좌수영, 순천, 남원이라는 세 고장으로 분산하여 각각 열두 명, 다섯 명, 다섯 명씩 수용하도록 했다. 그 고장들도 다 전라도에 있다.
39.   전라도의 크기는 어느 정도이며 그 곳 위치 및 실정은 어떠한가?
39.   남쪽에 있는 도로서 52개의 고장이 있고, 전국에서 제일 인구 밀도가 높으며 생활 수준이 뛰어나게 높다.
40.   국왕이 놓아 주었는가, 아니면 도망을 쳤는가?
40.   국왕이 우리를 놓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기회를 포착하기가 무섭게 도주하기로 8명이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평생을 시름 속에 살아가느니 차라리 최후의 죽음을 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1.   탈출 당시 생존한 일행 수는 몇 명이었으며, 다른 자들에게도 탈주 계획을 알렸는가, 아니면 알리지 않았는가?
41.   당시의 생존자는 16명이었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사전 연락 없이 우리 8명이 꾸민 일이다.
42.   그들에게 예고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42.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제각기 자기 소속 고장의 지방관에게 출석 신고를 해야만 했고 출입 허가를 교대로 받았던 관계로 일행이 동시에 다 함께 떠날 수 없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43.   어떻게 하면 잔류자들이 그 곳을 빠져 나올 수 있겠는가?
43.   일본 황제가 조선왕에게 지금이라도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도록 부탁 편지를 쓰는 방법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고 본다. 황제가 매년 난파된 그의 백성을 되돌려 보내고 있으므로 왕이 그 같은 부탁을 감히 거절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44.   탈출은 몇 번이나 시도했으며 두 번 실패한 이유는 뭔가?
44.   이번이 세 번째이며, 첫 번째는 퀠파르트 섬에서 그들 배의 작동법에 서툴러 돛대가 두 번 부러졌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수도에서 청국 사신에게 시도했을 때는 그 사신들이 왕에게 매수당하는 바람에 두 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45.   왕에게 보내 달라고 청원해 본 적이 있는가, 어째서 왕은 왜 그것을 거절했는가?
45.   왕은 물론 의정부에도 누차 진정한 바 있으나, 자기들 나라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나머지 어떤 외국인도 자기 나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는 것이 한결같은 그들의 답변이었다.
46.   타고 온 배는 어떻게 구했는가?
46.   구걸을 해 모아 둔 자금으로 우리가 직접 매입했다.
47.   그와 같은 배를 전에도 더 가지고 있었는가?
47.   이게 우리의 세 번째 배이긴 하나, 다른 배들은 그것을 타고 일본으로 도주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48.   도주한 고장은 어디며, 그곳에서 살았는가?
48.   좌수영에서 도망쳤으며, 도주한 일행 가운데 5명은 그곳에서 살았고, 3명은 순천에서 살고 있었다.
49.   출발한 곳이 여기서 얼마나 멀며,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는가?
49.   좌수영은 우리 짐작으로는 나가사키에서 약 50마일 거리에 있고 고토에 이르기 까지 사흘 간 운항했으며, 고토에서 나흘 머문 다음 고토에서 여기까지 이틀 걸렸으므로 다 합쳐 총 9일 만에 도착한 셈이다.
50.   고토에는 왜 갔으며, 일본인들이 우리(하멜일행)에게 접근했을 때 왜 다시 도망치려고 했는가?
50.   폭풍을 피해 그 곳에 기항하지 않으면 안 될 다급한 처지였고, 기상이 약간 좋아지자 목적한 나가사키를 찾아 항해를 막 계속하려는 참이었다.
51.   고토 책임자들이 어떻게 대했고 또 대접했으며, 그들이 대가로 뭘 요구하거나 받지는 않았는가?
51.   일행 중 두 사람을 육지로 연행해 갔으며, 우리에게는 깍듯한 대접을 해 주었고, 그 대가로 뭔가를 요구한다든지 받은 사실은 없음.
52.   일행 중 누가 전에 일본에 다녀간 사실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뱃길을 알았는가?
52.   아무도 와 본 적이 없음. 나가사키에 다녀간 조선 사람들 몇이 길을 가르쳐 주었고, 우리 항해사가 예전에 들려주었던 그 방향이 어렴풋이나마 아직 기억에 남아 있었다.
53.   아직도 그곳에 갇혀 있는 잔류자들의 성명 나이 그리고 그자들의 항해시 직책은 무엇이었으며, 현재 살고 있는 거주지는?
53.  
  • Johannis Lampen, 조수, 36세
  • Hendrick Cornelissen, 2등 갑판장, 37세
  • Jan Claeszen, 요리사, 49세, 이상은 남원에 살고 있음
  • Jacob Janse, 조타수, 47세.
  • Anthonij Ulderic, 포수, 32세.
  • Claes Arentszen, 급사, 27세, 이상은 좌수영에 살고 있음.
  • Sander Basket, 조타수, 41세.
  • Jan Janse Pelt, 하급 갑판원, 35세, 이상은 순천에 살고 있음.
54.   (우리의) 이름, 나이와 항해시의 직책은?
54.  
  • Hendrick Hamel, 서기, 36세
  • Govert Denijszen, 조타수, 47세
  • Mattheus Ibocken, 의사조수, 32세
  • Jan Pieterszen, 포수, 36세
  • Gerrit Janszen, 포수, 32세
  • Cornelis Dirckse, 하급갑판원, 31세
  • Benedictus Clercq, 급사, 27세
  • Denijs Govertszen, 급사, 25세

이와 같은 질문과 응답으로 심문이 1666년 9월14일에 이루어 졌다.
계속해서 10월25일 점임 그리고 신임 지방관 앞으로 재차 소환되었고,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불려가 위에 기술한 내용에 대한 재심문이 있었고, 그에 동일한 내용인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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