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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탈출하는데 성공한 하멜 일행 8명은 조선인들이 추격해 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돛이 눈에 띄지 않도록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 항해를 시작하였다.
저녁 무렵에는 계속되는 서풍으로 전신이 마비될 듯하였으나, 이때는 조선 영역의 제일 끝 부분으로 다시 붙잡히리라는 공포감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하멜 일행이 일본으로 탈출하여 표착했던 현재 나마촌의 모습오전, 일본 열도에 속하는 섬 하나가 그들의 눈에 띄었고 이것은 바로 일본의 구주지역에 있는 히라도(平戶) 근처였다.

이곳에는 이전에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나, 1666년 당시에는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라는 인공섬에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다.
이날 저녁은 우선 섬이 보이는 곳에까지 도착해 섬의 서해안에서 정박했다.

 

 

풍향이 계속 바뀌는 가운데 일행은 여러 섬들이 줄지어 늘어 선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그 열도를 따라 항해를 계속했다.

 

 

역시 어제 저녁과 같은 지점이었다. 조수의 영향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열도를 벗어나려고 바다 쪽으로 돌진하였으나, 강풍으로 인해 어떤 만(灣)에 들어가 닻을 내렸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밥을 지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배를 타고 지나가는 주민들이 간혹 보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하멜 일행에게 별 신경을 쓰고 있는 기색은 안보였다.


저녁 무렵에 만의 여섯 명의 무사를 태운 배 하나가 맞은 편 해안에 한 사람을 내려주는 것이 보였다. 하멜 일행은 이를 보고 다시 바다 쪽으로 도망치려고 하였으나, 결국 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때 일행은 그들이 말로만 듣던 일본인과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 일본인에게 준비해간 네덜란드의 깃발을 꺼내 보이며, “홀란드 나가사키”라고 외쳤다.

 

하멜 일행이 만에 도착한 사건으로 해안일대는 어수선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하멜은 옆구리에 칼을 한 두 개 쯤 차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이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이들은 사무라이(=侍, 무사)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일반 백성이나, 상민들은 칼을 옆구리에 찰 수가 없었으며, 사무라이만이 칼을 두 개 찰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무라이의 지배층으로서의 특권이었던 것이다.

 

 

 

이곳은 지금까지 일본에서조차 어느 연구자도 언급해오지 못한 것이었으나, 최근에 명확하게 밝혀졌다.

 

일본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분류기사대강(分類紀事大綱)』 33권의 「아란타인조선강표착지일건(阿蘭陀人朝鮮江漂着之一件)」에는 “네덜란드인은 조선국에 12~13년 이전에 표착하여 그곳에 붙잡혀 있었는데, 그 중에서 8명이 고토(五嶋=五島)에 도망쳐 왔다.”(阿蘭陀人朝鮮國江十二三年以前ニ漂着仕候を召捕置候, 其內八人上五嶋へ缺落仕參候)는 기록이 보이고 있어 이로써 일행이 고토 열도의 제일 북쪽에 위치한 “가미고토(上五島)”에 표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보다 더 정확한 사료가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저자 미상의 『일기(日記)』(自寬永十年五月至寶永午年十二月, 나가사키(長崎) 현립도서관 소장)라는 사료의 기록이다.

 

13년 이전에 고려(조선)의 앞 바다에 네덜란드 선박 한 척이 파선하였는데, 그 중에 네덜란드인 7명이 고려(조선)로부터 고토 영내의 「나마(=なま)」라고 말하는 마을에 도망해왔다. 관문 6년(1666년) 8월 16일에 나가사키(長崎)에 도착하여 즉시 데지마(出島)에 들여보냈다.

 

(원문 : 十三年以前ニ高麗之前ニ而阿蘭陀壹?破損仕候內, 阿蘭陀七人高麗より五嶋之內なまと申村ニ逃參, 寬文六年午ノ八月十六日ニ長崎江參, 則出島御入被成候事)

 

 

 

 

이 기록은 관문(寬文) 6년조(1666)에 기록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말하는 13년 전이라는 것은 1653년으로 하멜 일행제주도에 표착한 해이다.

그런데, 네덜란드인 7명이 고토에 도망해왔다고 하나, 실제로 고토에 도망해 온 하멜 일행은 8명이므로 약간 인수에 착오가 있으나, 실은 이것을 기록한 자가 1668년 조선에 남아있던 잔류 네덜란드인이 일본에 온 숫자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즉, 하멜 일행이 1668년 일본으로 탈출하게 됨에 따라 일본 정부는 조선에 아직도 생존해 있는 네덜란드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선에 그들의 송환을 요청함에 따라 1668년 송환 당시가지 생존해 있던 네덜란드인 7명이 일본으로 송환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토 영내의 「나마」라고 말하는 마을에 도망해왔다.”라는 내용으로, 일행의 표착지를 아주 마을 단위까지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이 기록은 나가사키 부교(奉行)소에서 작성된 것으로 하멜 일행이 고토에 표착한 후, 고토번의 호위 하에 나가사키에 보내져 부교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그 신빙성은 거의 100%에 가깝다.

 

 

 

현재의 가미고토(上五島)에는 나마(奈摩=なま)라는 지역이 있으며, 『일기(日記)』라는 사료에 보이는 나마(なま)라는 마을은 나마(奈摩)와 같은 지역인 것이다.


일본의 지명대사전인 『각천일본지명대사전(角川日本地名大辭典)』42권(角川書店, 1987)에 의하면, 나마(奈摩)라는 지명은 원래 나마(那摩)라고 기록되고 있었으나,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부터 나마(奈摩), 에도시대(江戶時代)에는 나마촌(奈摩村)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하며, 근세 초기에는 아오가타(靑方) 마을의 일부였다.
1661년부터는 하타모토(旗本) 급의 대명(大名)이었던 고토(五島)씨의 지행지로 후쿠에(富江)령이 된 곳이다.

 

이러한 사실은 코토(五島)의 고지도로부터도 명확해진다.
특히, 「오도지고도(五島之古圖)」는 고토(五島)관계 지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마(ナマ)라고 나마촌(奈摩村)이 표기되어 있으며, 당시의 민가수가 “△四十”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오도도   오도지고도

 

 

「구오도도(舊五島圖)」에도 나마포(奈摩浦)의 끝에 나마촌(奈摩村)이 표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나마촌(奈摩村)이라는 곳은 『일기(日記)』라는 사료에 보이는 “13년 이전에 고려(조선)의 앞 바다에 네덜란드 선박 한 척이 파선하였는데, 그 중에 네덜란드인 7명이 고려(조선)로부터 고토 영내의 「나마(=なま)」라고 말하는 마을에 도망해왔다.”의 “나마라고 말하는 마을”이다.

 

이러한 근거로부터 하멜 일행 8명은 조선에서 탈출해 현재의 나마(奈摩)표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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