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하멜정보관>서울생활>하멜일행의 무기개발>참여할 수 없었던 이유

 

하멜 일행이 서양의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만인(蠻人)은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 역법과 의술에 정통하다. 기교가 있는 장인과 뛰어난 대장장이는 모두 바다에서 사망했는데, 단지 성력(星曆, 천문)을 이해하는 자 1명, 권법을 잘하는 자 1명, 조총을 잘 다루는 자 1명, 대포를 잘 다루는 자 10 여명이 있었다.”는 『硏經齋全集』의 내용으로도 알 수 있다.

 

즉, 그들 중에 생존자는 대부분이 병기에 뛰어난 자들이었고, 그러한 그들의 능력이 있었기에 훈련도감으로의 배속은 조선 정부로서는 적절한 조치였다.

 

 

 

당초에 박연과 같이 이용하려 했던 하멜 일행은 점차 문제 집단으로 전락된 것이고, 또 격리시켜야만 할 존재로 조선 정부에 인식되어 버린 것이다.
하멜 일행을 서울과 청국 사신의 통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일본인이 왕래하던 부산으로부터 먼 곳에 위치한 전라도 지역으로 분치한 것은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박연은 서울에서 조선의 정식 관리로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더구나 병서와 대포제조 등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항왜 및 귀순 중국인을 거느리는 일종의 “외인부대”의 책임자였다.

 

박연은 후에 무과에 급제하기도 했으며, 조선의 여성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 또한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있었다(『석재고』). 무엇보다도 긴 기간을 조선에 체재하고 있었기에 언어 소통에 대한 문제점도 없었다.

 

조선에 표착할 당시 벨테브레라는 이름의 네덜란드인이 조선의 병기개발과 개량에 중심적인 역할을 다하며, 조선인 박연으로 조선 사회에 동화되어 간 것이다.


때문에 하멜 일행이 표착했을 당시 박연에게 일본으로의 송환과 박연의 송환 가능성을 애원했어도 오히려 그들의 요청을 묵살하며 조선 체재를 권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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