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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17세기에 조선에서 행해진 서양식 무기 개발을 두고 여기에는 막연하게 하멜 일행이 관여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예로 김종수씨는 「朝鮮後期 訓練都監 運營의 社會經濟的 影響」(『軍事』33, 1996)에서 하멜이 조선의 조총개발에 참여했었다고 주장하였고, 또 KBS 방송국에서 하멜의 조선 표착을 중심으로 제작한 2부작 다큐멘터리 『중세 조선의 비밀-하멜표류기-』(1996년 8월 25일, 9월 1일 방영)에서는 “하멜 일행이 조선의 병기 개발에 개입하고 있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효종실록』효종7년 7월 갑자조에는 이와 관련된 명확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새로운 체제의 조총(鳥銃)을 만들었다. 이에 앞서 만인(蠻人)이 표류해 와 그들에게 조총을 얻었는데, 그 체제가 매우 정교하므로 훈국(訓局, 훈련도감)에 명하여 모방해서 그것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 기록으로 본다면, 남만인(南蠻人)이 표착해 왔을 때 가지고 온 조총이 정교하니, 훈련도감에 명하여 그것을 모방해서 서양식의 새로운 조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이미 조선은 남만 조총의 위력과 편리성에 대한 정보를 왜관(倭館)을 통해 듣고 있었다.

 

또 1648(인조26)년 10월에는 영의정이 남만(南蠻)의 조총은 운용하기에 가볍고, 거리도 2·30리(里)까지 도달할 수 있으며, 또 연속 발사도 가능하므로 기진흥(奇震興)에게 감독하게 하여 제조를 지시했다는 보고를 하고 있었으며, 인조도 그렇다면 많이 제조하라는 승인까지 내리고 있었다(『備邊司謄錄』인조26년 10월 3일조).
이 때 남만총이 제작되었는지 어떤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효종실록』효종7년 7월 갑자조에서는 확실히 남만총을 모방해 제작하고 있었다.

 

조총의 제작 시기와 당시의 표착 남만인으로 생각해 볼 때, 표류한 만인이라는 것은 3년 전인 1653년에 표착한 하멜 일행이다.
또, 성해응의 『연경재전집』으로부터 하멜 일행이 표착했을 당시에 조총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어, 하멜 일행이 표착했을 당시의 조총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훈련도감에서 네덜란드인의 조총을 모방하여 새로운 서양식의 조총을 제작했을 때에 하멜 일행은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멜보고서』에 의하면, 그들은 1656년 2월 초순경에 박연과 한강변에서 이별한 후, 전라도를 향해 서울을 떠나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게 된 이유와 하멜 일행의 무기 개발에 대한 논증과는 깊은 관련이 있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들의 탈출사건과 관련된 기록은 『하멜보고서』, 『효종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을 비롯해, 『훈국등록』도 있다. 이에 의하면, 조선 정부에서는 청국 사신들에게 하멜 일행이 서울에 체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기 위해 청국 사신의 서울 입경 때마다 수차례에 걸쳐 남한산성에 감금하였다.

 

1655(효종6)년 3월의 청국 사신 입경 때에도 하멜 일행은 외출이 금지되었고, 이것을 위반했을 때는 엄벌에 처한다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등항해사 헨드릭 양세 보스가 거류지를 탈출해, 귀국을 위해 서울을 떠나고 있던 청국 사신의 행렬을 뛰어들어 안에 입고 있던 네덜란드 옷을 보이며, 본국으로의 송환을 요청하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서울에서의 탈출 사건인데,『하멜보고서』에 의하면 이 사건은 청국 사신에게 뇌물을 줌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하멜 일행에 대한 사형까지 논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을 가련히 여긴 인평대군의 도움으로 인해 전라도로의 유배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을 배경으로 서울 떠나게 되는데, 바로 그 출발 시기가 1656년 2월 초순경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하멜 일행의 조총 제작 시기는 『효종실록』효종7년 7월 갑자조의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미 이 날자보다 이전에 일행은 전라도로 유배를 가 있었다.

 

 

 

탈출 사건 이전에 조총제작이나 무기 개발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으며, 오히려 그들에 대한 감시는 더더욱 엄격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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