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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에 실패한 하멜동료들하멜은 제주에서 이원진 목사의 심문을 받은 후에 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기록하고 있다.
즉, 목사 이원진은 선하고 이해심이 있으며, 서울 출신에 70정도의 나이로 조선 국왕, 즉 효종의 두터운 신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이원진은 이국 땅에 표착한 하멜일행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주기도 했으며, 또 먹을 식량을 지급함과 동시에 매일 교대로 6명씩 외출할 수 있는 기회까지 부여해 주고 있었다.


더욱이 이원진은 하멜일행과의 대화 시간을 자주 가졌기 때문에 후에는 어느 정도 몸짓과 서투른 말로 어느 정도의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이원진은 하멜일행에게 적대적인 인물이 아닌 원조자로서의 역할을 베풀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일행에게 향연과 오락시간을 주어 더 이상 슬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또 왕에게 보낸 서신이 도착하는 대로 일행을 다시 야판(일본)으로 보낼 것이라는 말과 함께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며, 매일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었다고 하멜은 기록하고 있다.

 

 

 

이원진은 떠나기 전에 두루마기와 버선, 그리고 신을 한 켤레 씩 지급해주면서 추위를 잘 견디라고 격려해주기도 했으며, 또 압수했던 하멜일행의 많은 책들을 돌려주기도 했다.
또한 서울에서 내려 온 통역자 박연으로 하여금 일본으로 보내주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다는 뜻을 전해하기도 했으며, 서울에 가서 일행을 석방시키거나 서울로 상경할 수 있도록 힘을 써줄 것까지도 약속했다.
하멜의 기록에 의하면 이원진은 1654년 1월 초에 제주를 출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부임하자마자 일행의 부식물을 모두 압수했으며, 그로 인해 밥과 소금으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또한 이원진 목사가 제주를 떠난 후부터는 쌀 대신에 보리가, 밀가루 대신에 보릿가루가 지급되었고, 부식은 아예 지급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그들을 공포감에 사로잡게 하였고, 결국에는 6명이 이전부터 눈여겨 두었던 배를 훔쳐 도망칠 계획을 세워두기도 했다.
탈출에 실패한 하멜동료들1654년 4월 말에 탈출할 기회를 얻었으나, 개가 짖었기 때문에 경비가 삼엄해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돛대가 부러져 해안가로 밀려오게 되었고, 그들을 추격해 온 2척의 배가 그들에게 접근하자 그들에게 돌격하여 승선했던 조선인들을 배 밖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출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성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배에 물이 차서 더 이상은 항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체포된 그들은 공모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엄격한 심문을 받게 되었고, 탈주자들은 곤장 25대씩을 맞아 한 달 정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가 없을 정도였다.
일행 또한 외출이 전면 금지되었고, 삼엄한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6~7일 후에 4척의 선박에 나누어 승선했는데, 양 발목과 한 손에는 자물쇠가 채워진 채 였다. 왜냐하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있을지도 모를 탈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틀간 그런 식으로 승선해 있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숙소로 다시 되돌아 온 후, 4~5일이 지난 후에야 다시 출발 할 수 있었다.
결국 하멜 일행이 제주도를 출발한 것은 1954년 6월 초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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