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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하멜 일행이 표착지에서 대정현으로 이동한 거리를 4리그·4마일, 또는 4밀렌이라는 『하멜보고서』 필사본에도 없는 거리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필사본에는 네덜란드 마일인 “4메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근거로 표착지를 추정한다면, 1메일이 5,555.6m로 4메일이 약 22.2Km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또, 제주도내 지역 간의 거리를 환산할 때 이용되는 조선시대의 리수(里數)를 적용할 때는 현재의 10리(里)=4Km가 아니라, 조선시대의 리수(里數) 10리=약 4.5Km를 이용해야만 한다.
두 가지 거리환산의 문제점은 거의 모든 선행연구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삼아 표착지를 추정한다면, 결국 정확한 표착지는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하멜보고서』가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부상을 당한 일행은 들 것에 의해 이송되고 있었으며, 조선인들에 의해 이송되고 있는 정신이 없는 상황 하에서 이국(異國)에서의 이동 거리를 4메일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디까지나 하멜 일행이 추측한 거리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를 신봉하여 4메일 떨어진 지역을 표착지로 본 다는 것은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지영록』은 유일하게 하멜의 표착지를 기록하고 있는 사료이며, 또 『지영록』의 다른 표착 기사의 정확성으로 볼 때, 대야수 연변 표착은 분명한 사실로 판단된다.
단, 대야수 연변이 어디인가의 문제점이 남지만, 그것은 본고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수월봉을 기준으로 남동쪽 해안가 부근이며,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수월봉 남쪽 해안가에서부터 남제주와 북제주를 경계하는 하천 “고샘이내” 부근까지라고 판단된다.

그곳은 대야수 연변으로 큰물·대물이라 불리는 해안가의 연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남사록』의 기록, 대야수에서 대정현까지의 13.5Km라는 거리와도 거의 일치한다.

 

 

 

용머리 해안가를 표착지로 생각할 만한 문헌적 사료가 전혀 없고, 또 전술한 『하멜보고서』의 4메일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곳은 단지, 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착을 기념하기 위한 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스페르붸르호 탐사 작업의 결과에 따라 표착지와 관련된 논의도 종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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