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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8월15일과 16일 새벽 사이에 하멜 일행은 스페르붸르호에 승선히여 일본으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제주에 표착하였다. 제주에 표착한 것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조선의 많은 사료들이 이에 대해 기술하고 있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하멜 일행이 제주의 어느 곳에 표착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멜 표착지가 정부의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지정되거나, 또는 학자들에 의해 공인된 지역은 없었으나, 최근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지영록(地瀛錄)』이라는 사료에 수록된 「서양국표인기(西洋國漂人記)」“대야수(大也水) 연변”이라는 곳에 표착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하멜 일행은 제주도의 “대야수 연변”에 표착하고 있었다는 것에는 의견을 일치를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하멜 일행의 정확한 표착지는 어디일까?
지금까지 많은 선학들에 의해 하멜 표착지가 추정되어 왔는데, 추정되고 있는 지역과 견해들을 분류한다면, 대략적으로 ① 하멜기념비 주변 지역 표착설, ② 중문해안 표착설, ③ 강정해안 표착설, ④ 대야수 연변 표착설, ⑤ 중국 표착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중국에 표착했다는 주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생략토록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명확한 표착지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들이 부합되어야 한다.

 

 

 

보고서에는 정오 조금 전에 텐트 주변에 1명이 나타났다가 도망갔고, 정오 직후에 3명이 출현하고 있으며, 저녁 무렵이 되어서는 100여명의 무장한 병력이 일행을 감시하여, 18일 정오경에는 1~2천명의 기보병이 텐트 주위를 에워쌌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볼 때, 첫 발견자 1명은 표착지 부근의 주민이나 차귀진 소속의 병사일 것이며, 정오 직후의 3명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녁 무렵의 100여명의 병사는 하멜 일행이 대정현 관할에 표착했고, 또 1702년에 대정현의 군사가 224명이었다는 기록과 위치로 추측할 때 대정현 소속 병사이며(『耽羅巡歷圖』「大靜操點」), 18일 정오경에 도착한 병사는 제주목사 이원진이 대정현감 권극중과 판관 노정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살펴보라는 지시(『효종실록』효종4년 8월 무진조)에 의한 병사들로 대정현의 병사와 제주목의 병사가 합쳐진 인원일 것이다.


왜냐하면 1653년 당시 제주(본주)에는 유사시를 대비한 잡색군(기병95명, 보병790명)과 속오군(3,056명)을 제외하더라도 騎步兵·水軍·牙兵·差備軍 등 약 1,426명 정도가 있었으므로(李元鎭『耽羅志』), 『하멜보고서』의 1-2천이라는 기록은 어느 정도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만약 하멜 일행이 용머리 해안에 표착했다면, 정오 직후에 연락을 받아 출동한 대정현 병사들이 대정현으로부터 약 10리(4.5Km, 『東國與地勝覽』권38) 정도뿐이 떨어져 있지 않은 산방산 앞 용머리 해안까지의 거리를 약 반나절이 걸려 도착하고 있어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환산거리 1메일 =5,555.6m
1척=20.81Cm, 1보=6尺, 1리=360보
기본거리
4메일 5,555.6m × 4메일 = 2,222.4m(약 22.2Km)
1리 20.80Cm × 6척 × 360보 = 449.496m
10리 449.496m × 10 = 4,494. 96m(약 4.5Km)
4메일 2,222.4m ÷ 449.496m = 49.43리
4리그 1리그 = 약 3마일, 1마일=1609.3m
4리그 = 12마일 = 19311.6m(약 19.3m)

- 하멜의 표착지 추정을 위한 기본거리 및 거리 환산표 -

 

4메일을 현재의 거리 단위인 마일로 환산하면, 1마일=1,609.3m, 4마일=6437.2m가 되어, 용머리 해안에서 대정읍까지의 거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네덜란드 메일을 영국 마일로 변환하여 계산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 4메일과 하등의 관련성이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4메일은 약 22.4Km(약 49.4리)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용머리 해안 부근은 대정에서 약 4.5Km~5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하멜 일행이 오후부터 5~6시간 걸려 이동한 거리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멜보고서』 의 4메일지금까지의 하멜 표착지에 관한 모든 선행 연구는 기본적인 거리 환산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며, 대부분의 연구자가 오역을 포함한 『하멜보고서』의 중역본을 이용해 4리그로 자설을 말하거나 또는, 당시의 독일 마일 7.4Km를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네덜란드에는 거리 단위로서 메일이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해상에서의 거리는 1메일이 5,555.6m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일부의 연구자는 『하멜보고서』의 4메일에만 중점을 두고 있지만, 8월21일의 기록에 의하면, 하멜 일행 중에는 당시 부상자가 많았고, 말을 탈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말이 주어졌지만, 부상해서 말을 탈 수가 없는 자들은 들 것에 의해 대정으로 이동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이국에서의 이동거리를 과연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생긴다.

하멜 자신이 이 거리를 기록한 것은 확실한 것이지만, 4메일은 부상자들과 함께 이동한 그의 추측 거리이며, 이것을 절대적으로 신용해 표착지를 추측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

 

 

 

요즘에는 10리가 4Km이지만, 당시에는 10리가 약 4.5Km이었다.
즉, 『태종실록』태종 15년 12월 정축조에는 “지금 중국의 리수(里數)에 준하여 주척(周尺) 6척(尺)으로 1보(步)를 삼고, 매 3백 60보(步)로 1리(里)를 삼는다.”라는 내용이 보이고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주척(周尺)의 1척은 20.81Cm이며, 1보(步)는 124.86Cm이고, 1리(里)는 449.496m로 약 450m이다.

 

『하멜보고서』의 4메일과 당시의 조선 사료에 보이고 있는 리수(里數)를 환산하여 하멜의 표착지를 추정한다면, 위와 같은 당시의 리수(里數)를 기준으로 환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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