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하멜정보관>조선과 네덜란드>VOC와 조·일의 근대화>자주적 역사의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화가 양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명확히 밝혀진 사실이다.
다카하시 신이찌씨가 그의 저서 『양학사상사론(洋學思想史論)』에서 일본의 근대화와 관련지어 “양학의 승리”라고 평가했던 것은 그러한 사정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근세 초기의 단계에서부터 서양 학자들 초빙하여 소위 “서학(西學)” 수용에 힘을 들이고 있었으며, “서학부재(西學不在=洋學不在)”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서양 각국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근대화와는 차이가 있다.
일본의 근대화는 그 나라 자체의 경제적 발전, 국민국가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외교·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복합된 상황 하에 추진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자본주의 침략과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조선의 “자본주의적 맹아”(=내재적인 근대화의 노력)가 짓밟혀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일본에 의한 식민지 기간이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상쇄시켜 버린 것은 물론, 일제의 잔혹한 제국주의적 침략정책이 우리나라의 역사발전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앞에서와 같은 주장들처럼 일본과 네덜란드 관계에 중점을 두고 일본의 근대화를 해석하여 그것을 조선의 근대화에 적용시키는 것, 또 네덜란드의 조선무역 시도에 대한 일본의 견제 정책이 조선의 근대화에 대한 일본의 방해로 인식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이 문제는 한국의 역사관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 근대화의 후진성에 대한 원인을 네덜란드와의 접촉기회를 상실했던 것과 그것을 견제한 일본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한국의 자주적 역사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즉, 네덜란드와 일본에 의해 마치 조선의 근대화가 좌지우지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탄생한, 한국의 역사 자체가 압도적인 밖으로부터의 영향아래 형성되어 한국 독자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위 “타율성사관”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타율성사관”은 한국의 “반도적 성격론”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국은 대륙의 부속적인 존재이며 많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그 영향 하에 존속되어 왔으며 그 원인이 바로 반도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때 일본이 한국사에 적용시켜 유행했던 역사의 지리적 결정론이며, 바로 여기에서 외래의 영향으로 타율성이 성립되었다는 “타율성사관”이 탄생한 것이다.

 

 

 

소위 “근대화의 성공”이라는 것이 현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그리고 후진국의 차이를 가르는 하나의 요인이기는 하나, 일본의 그 “성공”이라는 것은 서양 제국주의를 기준으로한 근대화이며,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일본에 의한 강제된 희생 위에 성립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억측일지로 모르나, 그러한 국가를 모델로 근대화를 추진했다면, 지금의 일본이 그러하듯 세계사에서 오명을 씻을 수 없는 암울한 시대를 간직한 한국사를 탄생시켰을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어느 설이 정확한가, 또 어느 설을 수용해야하는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근대화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있으며, 또 “근대화”라는 용어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서양의 “근대화” 개념을 어떻게 동양에 적용시키는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전술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가 이 문제를 보다 발전적인 동시에 객관화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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