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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VOC)는 하멜 일행의 귀국 후 코레아(Corea)라는 조선과의 직접무역 전담선을 만들 정도로 조선과의 무역에 열심이었으나, 결국 이러한 계획과 시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암스테르담 항구 앞으 VOC상선

 

VOC의 일본무역은 1652년부터 1671년 사이가 최전성기였으며, 이 시기의 일본을 말하기를, “회사의 육지 무역 및 인도(동아시아) 이윤의 가장 큰 희망”이라 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일본은 네덜란드에게 가장 중요한 통상국이었던 것이다.

또, 당시 VOC는 세이론·반다·말라카·타이·바타비아·솔론섬 등의 상관에서 전부 무역 결손상태에 있었는데, 나가사키의 일본 상관으로부터 얻는 이익에 의해 그 결손을 보충하고 있었다고 말해질 정도였다.
일본 상관을 상실하는 것은 아시아 전체에서의 가장 중요한 거점을 상실하여 VOC 자체의 경영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이었으며, 동아시아에서 다른 유럽 세력에게 일본을 거점으로 한 상관의 막대한 이익을 양도할 수밖에 없는 위험성도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박물학자로도 유명한 시볼트는 후에 그의 저서 『일본』에서, “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는 상관에서 얻은 정보에 의해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조선과 우호 통상 관계를 맺기 위한 일보를 진척시키는 것은 아직 불이익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당시 번성하고 있던 일본 무역에까지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조선무역 포기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즉, 그는 VOC에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무역이며, 조선무역이 초래할 악영향을 고려해 회사는 조선무역 계획을 포기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사건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그것은 전술한 스펙스, 쿠케박케르, 부룩크 등의 보고서로 알 수 있는데, 구체적인 견제의 상황으로서 일본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는가, 명확히 제시된 기록을 아직 발견할 수는 없지만, 쓰시마(대마번)의 조선무역 독점을 위한 배타성 등으로 볼 때, 일련의 견제가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일본 측의 입장에서도 VOC의 조선무역은 결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조선은 해금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선택적인 국제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일본·유구 등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적극적으로 국가 레벨에서의 대외관계를 맺으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코레아호가 조선으로 향해 무역교섭을 행한다 하더라도 청의 간섭을 받아오던 조선이 서양과의 관계에서 청의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 정부 스스로가 네덜란드와의 접촉을 기피했을 것을 추측케 하는 기록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1627년 조선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박연(벨테브레)이 제주도에서 하멜 일행과 처음 대면했을 때, 그들 일행에게 말한 『하멜보고서』의 다음의 내용으로부터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은 누차 국왕과 그 외의 대관에게 일본으로 송환시켜줄 것을 부탁했지만, 언제나 거절되어 ‘귀군이 새라면 그곳에 날아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외국인을 국외로 내보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귀군은 의식주를 부여받아 이 나라에서 일생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즉, 조선 정부는 스스로 외교관계가 없는 외국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현행 일본무역이 가져오는 막대한 이윤이었으며, 그 이윤을 유지하면서 계속적으로 일본을 동아시아 무역시장의 거점으로 삼기 위한 실리정책이기도 했던 것이다.
VOC가 조선과의 무역을 추진하려고 했던 이유가 중국 산물을 조선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중계무역지화에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들이 얼마나 중상주의적이며, 얼마나 실리적이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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