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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의 조선무역에 대한 열망은 코레아(Corea)호의 건조로 나타났다.
네덜란드와 아시아 사이의 선박 출항기록에 의하면, 코레아호는 1669년 5월20일에 네덜란드의 웰링헨(Wiehngen)을 출항해 케이프 로페즈를 거친 후, 1669년 12월10일에 희망봉인 게이프 타운에 도착하였으며, 1670년 4월2일에 바타비아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출발 당시는 31명의 선원이 승선하고 있었지만, 케이프까지의 항해 중 1명이 사망하고, 또 케이프에서 선원 1명이 승선하였으며, 그 이후의 선원의 교체나 사망은 확인할 수 없지만, 바타비아 도착 시에는 29명이었다.

 

 

 

아래의 보고서는 마테우스 환 덴 부룩크가 1670년에 동인도로부터 귀국한 함대의 사령관으로서 작성한 것을 바타비아 총독에게 제출한 것인데, 여기에서 그는 조선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와 함께 VOC의 조선무역에 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각하의 명령에 따라 코레아라는 큰 반도에서의 무역 거래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바, 그곳에서 1653년에 조난당해 탈출한 자들의 말과, 또 일본으로부터 입수된 최근의 정보에 의하면, 전술한 반도에는 상인이 전혀 없고, 어업과 농업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그 일부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타르타리아의 지배하에 있는 시나인(중국인)과 일본인 양쪽의 신하입니다만, 이 두 강대국은 우리들이 그곳(조선)에 가서 무역거래를 행하는 것을 방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후자 일본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모든 종류의 크리스트교가 일본의 주변에 체재하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변화와 반란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뿌리 깊은 강한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일본인이 코레아의 사람들을 포함해 그 주변 사람들과 거래를 행하는 것에 대해 사형으로 엄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쓰시마(대마도)의 영주만은 특별한 은총을 부여해 거래에 종사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추·정자(정향의 열매)·육두구(肉豆?)·목향·유향(乳香)·소목·백단 및 회사(VOC)에 의해 일본에 수입되어지는 그 밖의 많은 상품이 그곳(조선)에 보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품들은 육로를 통해서 시나(중국)에 보내어져 그곳에서 소비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금은과 교환되어 시나(중국)의 생사 및 견직물류를 입수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체재하고 있는 각하의 부하에 의해 작년 약 600폰드의 명주가 이 루트를 통해서 일본에 들어 온 것이 지적되었고, 또 그들은 그곳(조선)으로 항해한다는 생각을 포기하여 중지하고, 일본에서 추방되어 무역 거래를 잃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심 깊은 국민은 반드시 우리들이 일본국왕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계획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위의 기록은 한 마디로 조선은 VOC의 무역 대상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원인으로서 조선의 국내문제와 국외문제 모두를 언급하고 있다.
즉, 국내문제로서는 상인이 없고, 어업과 농업 위주의 가난한 사람들만이 살고 있으며, 국외적인 면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어 이 두 국가가 VOC의 조선 무역을 방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문제점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과의 문제점도 제시하고 있다. 크리스트교가 일본의 주변에 체재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변화와 반란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1637년에 크리스트교도를 중심으로 한 “시마바라(島原)·아마쿠사(天草)의 난”이 일어나 막부가 4만 여명을 몰살시킨 적도 있었고, 그로 인해 조선에도 크리스트교 금지정책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대마번에 의해서만 조선 무역이 일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고 있다.

 

 

 

즉, 중국→조선→대마번의 루트를 통해 600폰드의 명주가 일본에 들어 왔다고 했는데, 이는 대마번의 독점무역으로 침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언급한 것이며, 조선과의 무역 관계를 추진하는 것은 일본으로부터 VOC의 추방을 초래하게 되고, 일본과의 거래 기회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룩크의 이 보고는 당시 나가사키 상관에서 파악하고 있던 정보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가사키 상관장으로 하멜 일행의 조선탈출과 잔류네덜란드인의 구조요청을 막부에 행했던 다니엘 식스도 부룩크의 보고 내용과 거의 동일한 사정을 바타비아에 보고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조선 무역 불가론에 관한 이 보고는 VOC 본부의 조선무역 시도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으로, 조선의 열악한 경제 상황과 VOC와 일본과의 관계를 언급하여, 조선과의 무역으로 얻어지는 VOC의 이익보다는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VOC의 무역정책으로 합당하다는 정확한 상황 파악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VOC의 계획에 귀국한 7명의 하멜 일행도 자진하여 조선 무역에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등 VOC의 조선에 관한 관심은 더더욱 강해졌다. 그러한 관심의 표명은 본국의 VOC에서 바타비아 상관에 보낸 다음과 같은 서신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일 교역이 성황을 이루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성실하게 일본과의 교역 확충에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잘 이해했습니다. 중국 측의 저지는 차치하고라도 일본 측의 질투와 불신감이 조장되리라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의 사전 계획을 포기해야만 할 불가피한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약 행운이 주어지고 또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장차 그 상황이 어떻게 변화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므로 두고 보면서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위의 기록이 의미하는 것은 조선무역을 시도할 경우, 중국 측의 저지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며, 또한 VOC는 일본과의 무역 상실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라도 조선과의 무역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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