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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C 동인도연합회사 건물

 

네덜란드는 1515년부터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아왔으나, 1581년 독립전쟁에 승리하여 신교국으로서 독립국이 되었다. 그 후, 네덜란드의 각지에서는 수많은 무역 회사들이 설립되나, 각 회사들의 경쟁과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의회의 요망에 따라 1602년 국가 주도하에 통합된 회사, 즉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말할 수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VOC)를 창립하였다.

 

원래, 동인도회사라는 말은 일종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특허를 받고 있었던 회사로서 1600년의 영국동인도회사와 1664년 설립의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VOC(동인도연합회사) 마크VOC는 한글로 “훼오세”라고 발음하며, 이 VOC의 스펠링을 조합하여 VOC의 유명한 마크가 탄생된 것이다.
VOC는 여러 회사들이 연합하여 합병한 조직체라는 것은 그 명칭으로도 알 수 있는데, 합병전의 회사 규모에 따라 6개의 지부로 나누어 존속되고 있었다.
6개의 지부는 암스테르담, 엔크하이젠, 호른, 로테르담, 데르프트, 미델브르크에 위치해 있었고, 이 중에서 가장 큰 규모가 암스테르담에 있었다.

 

중역진은 처음에 73명으로 구성되었으나, 후에 60명으로 되었으며, 이 위에 “17인위원회(Heeren ⅩⅦ)”로 불리는 중역위원회에서 회사의 최종 결정을 담당하였다.

특이한 것으로 “17인위원회”라는 것은 강력한 전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 회사의 경리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으며, 무역 이윤의 배당 등에서도 수익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자의적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소규모 주식 소유자들에 의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멜이 귀국한 후, 조선에 체재하고 있었던 13여년의 임금 지불을 요청했을 때, 그에 대한 결정도 바로 “17인위원회”에서 내렸다.

 

 

VOC도 마찬가지였으며, 특히 동남아시의 향료와 중개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희망봉에서 타이완(臺灣)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거점을 확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때문에 VOC는 자바섬의 바타비아(자카르타)에 근거지를 만들어 포르투갈의 경쟁을 취하는 한편, 1609년에는 일본의 히라토(平戶)에 네덜란드 무역상관(1641년에는 데지마로 이전)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특히, 일본과의 무역에서는 중국으로부터 생사를 구입하여 일본으로 수출하는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무역 이윤을 거두게 되었다. 더욱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영국과의 무역 경쟁에 우세를 점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무역권을 선점하게 되어 17세기 중반에는 VOC 최대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이로 인해 영국이 아시아의 무역 쟁탈전에서 후퇴하여 이후 인도의 식민지화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아시아 진출의 최대 교두보였던 바타비아 상관이 자바 현지민의 반항과 행정 부패에 따른 비능률 때문에 성과를 거둘 수 없었고, 본국의 “17인위원회”도 별다른 회사의 개혁을 일구어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때는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앞섰던 식민지 왕국이었으나, 시장과 상품의 확보가 불가능하게 되어 무역 적자를 내게 되었고, 이후 영국으로부터도 압박을 받게 되면서 식민지 경영과 무역 진출에 어려움을 겪어 마침내 1800년에 이르러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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