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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큼시 하멜 생가터하지만,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이상할 정도로 극히 적다.

다만, 『하멜보고서』(=하멜표류기)와 간단한 그의 인적 사항, 그리고 네덜란드로 귀국한 후의 일부 행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는 1630년 네덜란드의 호르큼 (Gorcum)시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지고 있다.

호붸 (H.J. van Hove)씨의 저서 『 Hollanders in Korea』 (Het Spectrum BV, 1989)에 의하면 그의 부모는 드릭 하멜 (Dirck Hamel)과 훠헤르 (G.Verhaer)였으며, 부친은 세 번 결혼했었다는 가정사의 내용까지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린 시절에 어떠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호르큼시 고지도최근 호르큼시에는 하멜의 동상뿐만 아니라, 하멜이 살고 있던 곳에 하멜의 생가 터도 표식으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하멜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바로 1653년 조선에 표착하여 1666년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에 도착하기까지 약 13년간의 경험을 『하멜보고서』로 VOC(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 및 서유럽 세계에 한국을 널리 소개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2년에는 한국의 국가대표 축구팀이 네덜란드인 감독 히딩크씨의 지휘 아래 월드컵 4강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고, 2003년은 하멜이 한국의 땅을 밟은 지 350주년이 되는 해로서 더더욱 하멜과 네덜란드에 한국 사람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호르큼시 하멜 동상그는 1650년 11월6일 네덜란드의 텍셀(Texel)항을 떠났는데, 『나가사키 상관일지 (Dagregister Nagasaki)의 1668년 8월14일의 기록에 의하면, 1651년
7월 4일에 훠헬 스트라위스(Vogel Struijs)호의 포수로서 바타비아(Batavia)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빠르게 승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바타비아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기가 되었고, 1653년에는 장부 직원이 되었다. 장부 직원의 업무는 선박의 항해 유지와 재무 관리는 물론 재정을 맡아 보는 것이었다. 서열상으로는 항해사와 동등한 위치였다고 한다.

 

하멜은 1653년 6월18일에 스페르붸르(Sperwer)호에 승선하고 바타비아를 출발해 포르모사(Formosa, 현재의 타이완 )로 향하였는데, 그 배에는 코르넬리스 세사르 (Cornelis Caeser) 신임 타이완 총독도 승선하고 있었다.

7월16일에 타이완에 무사히 도착하였는데, 세사르 타이완 총독으로부터 다시 일본으로 항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총독에게 작별을 고하고 7월30일에 일본을 향하여 타이완을 출발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운명은 급변했다.

왜냐하면 8월11일부터 거세진 풍랑으로 말미암아 8월16일 새벽에 결국 미지의 땅 조선에 표착하는 난파사건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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